로마제국의 30PLUS - 장기집권한 황제들 로마-비잔티움 이야기

 선임황제로서 30년 이상 재위한 로마 황제 11인을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공동황제나 4두정의 부제로 재위했던 기간을 함께 계산할 경우, 마케도니아 왕조의 콘스탄티노스 7세 포르피로게니토스, 콘스탄티노스 8세, 팔라이올로고스 왕조의 미하일 9세, 콘스탄티누스 대제 등의 인물들이 30년 이상을 재위하였습니다. 




1. 바실레이오스 2세 '불가리아인 학살자'   49년 11개월(976~1025)

 바실리우스 2세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958년 출생하여 962년 공동황제로 임명되었습니다. 963년 아버지 로마노스가 사망했을 때 공동 황제였던 바실레이오스와 콘스탄티노스는 어린 아이였으므로 13년간 제국에서 명망을 날리던 장군들이 선임황제로서 이들을 보호하는 형태를 취하게 됩니다. 976년 요안니스 1세의 죽음으로 드디어 선임황제의 자리에 오르지만, 연이은 반란과 외종조부인 시종장 바실리우스의 그늘 아래에서 실권을 쥐지는 못합니다. 985년 드디어 시종장을 축출하고 권력을 손에 넣지만 989년에 와서야 모든 반란을 진압하고 안정된 치세를 시작하게 됩니다. 공동황제로서의 재위 기간을 계산하면 63년간 재위한 것이 됩니다. 



2. 안드로니코스 2세 팔레올로고스   45년 6개월(1282.12~1328.5)

 십자군에 의해 빼앗겼던 콘스탄디누폴리를 회복한 황제 미하일 8세의 아들입니다. 길고 긴 집권 기간 동안 제국의 쇠락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유명한 실책으로는 제국 해군을 폐지한 것이 있습니다. 안드로니코스의 재위 기간에는 베네치아와 제노바가 수도에서 각축전을 벌이는 등 제국의 위상은 끝도 없이 추락하였으며, 제국의 마지막 적 오스만 투르크가 비잔티움 역사에 최초로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폐위되는 과정마저도 순탄치가 않았습니다. 손자인 안드로니코스가 실수로 형을 죽이고, 그 충격으로 40년 가까이 공동 황제로 재위했던 아들 미하일 9세가 사망하고 할아버지 안드로니코스와 손자 안드로니코스는 내전을 벌이게 됩니다. 이 내전에서 손자가 승리하면서 안드로니코스 3세로 즉위하고 안드로니코스 2세의 치세는 막을 내립니다.



3. 테오도시우스 2세   42년 3개월 (408.5 ~ 450.7)

 395년 테오도시우스 사후 동방 제위를 계승한 아르카디우스의 아들입니다. 이 시기 서방에서는 닭치는 황제 호노리우스, 발렌티니아누스 3세 등이 재위하였습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업적은 콘스탄디누폴리를 천 년 동안 지킨 삼중성벽을 건설한 일입니다. 이 성벽은 '테오도시우스 성벽'이라고 불리지만 실제 공사를 진두지휘한 사람은 그의 섭정이었던 민정총독 안테미우스였습니다. 450년 사냥을 나갔다가 낙마사고로 사망합니다.



4. 아우구스투스   41년 7개월 (BCE27 ~ CE14)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입니다. 카이사르를 상속하여 내전에서 승리하고,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해 제국을 창설하였습니다. 긴 재위 기간 동안 자신의 혈통으로 후사를 이으려고 노력하였으나 결국은 재혼한 부인 리비아의 아들인 티베리우스에게 제위를 물려주게 됩니다. 이 황제의 재위 기간 동안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5. 요안니스 5세 팔레올로고스   38년 8개월 = 5년 10개월 + 21년 8개월 + 10년 9개월 + 5개월 (1341 ~ 1391)

 이 황제는 네 번 선임황제로서 통치했습니다. 말기 로마제국의 혼란상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가 있겠습니다. 앞서 소개한 안드로니코스의 손자이자 차차기 황제로서 즉위하였지만, 장인인 요안니스 칸타쿠지노스(요안니스 6세)가 내전 끝에 1347년 선임황제의 자리에 오릅니다. 이후 베네치아인들의 도움을 얻어 1354년에 선임황제로 복귀합니다. 베네치아를 방문했다가 빚을 갚지 못했다는 이유로 억류된 참 안습한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1376년 이번에는 아들에 의해서 폐위되었고 이번에는 투르크의 도움을 받아 1379년 복위됩니다. 1390년 이번에는 손자(...)에 의해 또다시 제위를 빼앗기지만 베네치아의 도움으로 복위하여 5개월 간 통치하다가 아들인 마누일 2세에게 제위를 넘겨주고 사망합니다. 정리하자면 황제위에 있었던 50년 동안 장인 - 본인 - 아들 - 손자, 4대간의 내전으로 제국을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황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6. 유스티니아누스 1세 '대제'   38년 3개월 (527 ~ 565)

 세계사 교과서의 단골손님 유스티니아누스입니다. 왕조를 개창한 삼촌을 보좌하다가 527년 제위에 올랐습니다. 그의 업적은 간단하게 1)고토회복 2)소피아 대성당 건립 3)로마법 대전 편찬으로 정리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 시기 사산조 페르시아에서는 '불사의 영혼' 호스로 1세가 즉위하여 유스티니아누스의 로마 제국과 함께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황후 테오도라의 사망 후, 말년에는 종교 문제에 골몰하였습니다.



7. 마누일 1세 콤니노스 '대제'   37년 8개월 (1143~1180)

 할아버지 알렉시오스 1세와 아버지 요안니스 2세가 회복시킨 제국을 물려받아 12세기 중후반 다시 한 번 로마제국의 힘을 지중해에 떨친 황제입니다. 이 시기는 서방 국가들과 동방의 로마제국의 역학관계가 서방 쪽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시기이기도 하며, 로마제국이 지중해 세계의 국제질서하에서 마지막으로 강대국의 면모를 과시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국력을 외부로 투사하는 데에만 힘써, 그의 사후 그가 이룬 거의 모든 업적은 물거품이 되고 4차 십자군에 의한 콘스탄디누폴리 함락까지 제국은 급격히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8. 알렉시오스 1세 콤니노스   37년 4개월 (1081~1118)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사상 최악의 상태에 빠져 있던 제국을 구해낸 명군입니다. 장녀인 안나가 쓴 역사서 '알렉시아드'의 주인공이기도 하며, 십자군의 시대를 연 황제로도 유명합니다. 바실레이오스 2세 사후 알렉시오스의 즉위까지의 혼란기에, 56년간 13명의 황제가 재위했던 것에 비추어 보면 그가 37년 간 재위하고 그의 왕조가 3대에 걸쳐 100년을 다스린 것은 그 자체로도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습니다. 



9. 마누일 2세 팔레올로고스   34년 5개월 (1391 ~ 1425)

 요안니스 5세의 둘째 아들로서, 아버지를 도와  형 안드로니코스를 몰아내고 제위를 승계했습니다. 이 시기에 비잔틴 제국은 이미 철저하게 몰락하여 더 이상 자체적으로 난국을 헤쳐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오스만 투르크는 콘스탄디누폴리를 8년에 걸쳐 포위하였는데, 마누일은 포위가 5년차에 이르던 해 수도를 탈출하여 서유럽에 구원을 요청하는 기나긴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마누일은 로마제국의 최북방 영토였던 잉글랜드까지 방문하면서 당대 서유럽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실질적으로 큰 도움을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동방에서 온 티무르가 오스만 투르크를 완파하면서 제국은 숨통이 트이게 됩니다. 말년에 아들인 요안니스가 촉발한 투르크와의 갈등에 의해 다시 한 번 수도가 포위되었으며 마누일은 굴욕적인 조약을 맺고 퇴위하게 됩니다.



10. 콘스탄티노스 5세 '똥싸개'   31년 10개월 (741, 743 ~ 775)

 성상파괴령과 2차 콘스탄디누폴리 포위전으로 유명한 레온 3세의 아들입니다. 똥싸개라는 별명은 그가 세례성사 때 제단에서 똥을 쌌다 하여 붙여진 것입니다. 즉위하자마자 매형인 아르타바스두스의 반란으로 제위에서 쫓겨났지만 아모리움에서 권토중래하여 743년 제위를 되찾습니다. 레온 3세에 이어서 성상파괴령을 밀고 나가 갈등을 유발하였습니다. 당시 아랍 제국은 우마이야 왕조에서 아바스 왕조로의 전환기였으므로 그는 아시아와 유럽 모두에서 상당한 군사적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사망 또한 원정에서 얻은 부상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11. 헤라클리우스 30년 4개월 (610~641)

 폭군 포카스를 축출하고, 페르시아의 침입으로 위기에 빠진 제국의 수도에 입성한 이래 그의 영웅적인 행보는 계속되었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영토를 정비하고 622년 대반격에 나선 헤라클리우스는 페르시아군을 연파하며 628년 전쟁을 종결시키고 상실한 영토를 전부 되찾습니다. 그러나 불과 10년도 안 되어 사막에서 온 정복자 아랍인들이 명장 칼리드의 지휘 하에 시리아와 이집트를 정복하였고 황제는 실의에 빠져 사망합니다. 하지만 헤라클리우스는 제국을 다가오는 위기에 맞설 수 있게 재편하였으며, 그리스어를 공용어로 선포한 것은 중세 로마로의 전환에 있어서 큰 상징이 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재위기간이 긴 만큼 유명한 황제들이 많습니다. 아우구스투스, 유스티니아누스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고 알렉시우스, 바실리우스, 헤라클리우스 등도 유명하죠. 다들 로마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황제들입니다.

반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황제로는 콘스탄티노스 5세나 테오도시우스 2세, 기타 후기 비잔티움 황제들이 있겠지요. 사실 정리하려고 찾아보기 전까지 테오도시우스 2세를 완전히 잊고 있었습니다. 과연 무관심의 시대 초기 동로마 황제...

일반적으로 비잔티움 제국으로 불리우는 시기는 궁정에 음모와 암살이 횡행하고 제위가 불안정했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재위 기간 랭킹에서 원수정 로마 황제는 아우구스투스 1명밖에 없습니다. 정리하면서 새삼 발견한 새로운 사실이네요.

덧글

  • TheodoricTheGreat 2012/08/23 17:04 # 답글

    테오도시우스 2세 같은 경우는 가늘고 긴 경우라고 봐야 하는지? 그래도 40년이상 황제자리를 유지했군요.

    진짜 의외입니다. 워낙 비잔틴 역사가 길어서 그런 거라고 봐야 하는지 판단이 안 서는군요. 불과 10년갓 넘긴 니케로포스 왕조Nikephoros (802–813)같은 경우도 있는데 말입니다.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Byzantine_emperors
  • 리카아메 2012/08/23 17:32 #

    그 왕조는 왕조라고 하기도 좀...

    왕조 하니까 생각났는데 콤니노스조의 족벌주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콤니노스조부터 팔레올로고스조까지는 어찌저찌 다 친인척 관계가 됩니다. 이사키오스 앙겔로스는 알렉시오스 1세의 외증손이고 테오도로스 라스카리스는 알렉시오스의 몇대인가 손녀사위고... 미하일 8세 팔레올로고스도 일단은 알렉시오스 1세의 직계후손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